성매매란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어쩔 수없이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내 스스로가 오랜 시간 동 안 성매매여성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덟에 시작된 성매매여성으로서의 시간들은 10년이 지난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 끝이 났고 그 후 5년은 탈업여성으로, 쉽게 말하자면 성매매에서 한 발작 물러나서 살아오고 있다.
성매매여성으로 살아오는 동안은 이런 생각을 자주했던 것 같다.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다면, 그래서 나라에서 관리해주고 직업으로 인정해주기로 해서 손님들에게 조금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콘돔을 끼는 손님으로만 골라 받을 수 도 있고, 무엇보다 인정된 직업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세상 앞에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마디로 공창제를 꿈꿔왔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현실에 젖어들고 익숙해져 나를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몸뚱아리를 상대들이 좀 더 합법적인 굴레로 취할 수 있다는 것 뿐, 내 도덕성에 대한 세상의 비난과 함께 인간자체로의 대우를 받을 수 는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까지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성매매란 거대한 늪 속에 직접 몸을 담고 있을 때 나는 성매매가 없어져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부터 그렇게 돈을 벌어 먹고살수 밖에 없었던 나는, 그것 외에, 그것 말고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익숙해져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세상에 툭 던져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래희망은 마담이나 업주가 되어 내 가게를 갖는 것이나, 작은 옷 가게를 하는 것, 그 뿐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불어난, 돌고 도는 돈의 필요에 따라 공장이나 식당일 정도의 적은 급여로는 생활이 되지를 않았고 짓눌린 몸처럼 정신건강도 피폐해져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기도 했고, 또 다른 사회가 요구라는 학력이나 경력, 자격 조건에 스스로가 미달된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십년이상을 보내고 이제 성매매여성이라는 이름이 내 것이 아니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온전한 선택이 아니다.
어리고 세상에 무지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가 갈 곳 이 없어 선택한 업소는 나에게 오라하는 유일한 곳이었고, 그 곳에서 손님들을 받으며 그들이 설사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한다해 도 우선에 걱정해야 하는 것은 하기 싫은 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니라 ‘저 사람은 이미 나에게 돈을 지불했고, 저 요구상항을 해주지 않으면 나는 돈을 벌수 없을 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
지불한 돈에 대해 손님이란 남자가 나에게 행할 수 있는 요구사항은, 처음부터 선이 없다. 돈을 받으려면 그냥 원하는 것을 다 해야 하는, 그래야 끝이 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왔다 갔다 하는, 코너에 벌거벗은 채로 몰려 있는 것 과 같다. 폭력은 꼭 피가 난무하니 않아도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는 매순간이 폭력의 연속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던져버린 후 생계가 또 다른 공포로 다가오는 그 상황 자체가 이미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없게 말이다.
연예인처럼 화장을 해야 하고,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늘 다이어트에 시달리며, 그 앞에 앉아있는 나는 이미 온전한 한 인간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나를 앞에 놓고 물건 값처럼 가격이 매겨지고 때로는 할인도 하며, 도대체가 기준을 알 수 없는 서비스도 요구 당하며, 오늘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에 더 잘해줘야 한다는 애프터서비스 도 만들어가며, 그냥 하나의 상품이 될 뿐이다. 돈을 지불하는 그 순간 손님이 상품의 주인이 되는 그 세계가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단칼에 피가 나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그 현실에 젖어들고 익숙해져 나를 잃어버리는, 내 스스로가 나에게 벌어지는 현실에 분노하기를 잊어 버리는 것, 그로 인해서 돈으로 한 인간을 소유 할 수 있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폭력인지도 구분 할 수 없이 스스로가 익숙해져버리는 것이 아닐까싶다.
이글은 성매매 방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성매매 경험여성 ‘앤지(필명)’씨가 쓴 글이다. [굿모닝충청]
성매매란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어쩔 수없이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내 스스로가 오랜 시간 동 안 성매매여성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덟에 시작된 성매매여성으로서의 시간들은 10년이 지난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 끝이 났고 그 후 5년은 탈업여성으로, 쉽게 말하자면 성매매에서 한 발작 물러나서 살아오고 있다.
성매매여성으로 살아오는 동안은 이런 생각을 자주했던 것 같다.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다면, 그래서 나라에서 관리해주고 직업으로 인정해주기로 해서 손님들에게 조금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콘돔을 끼는 손님으로만 골라 받을 수 도 있고, 무엇보다 인정된 직업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세상 앞에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마디로 공창제를 꿈꿔왔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현실에 젖어들고 익숙해져 나를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몸뚱아리를 상대들이 좀 더 합법적인 굴레로 취할 수 있다는 것 뿐, 내 도덕성에 대한 세상의 비난과 함께 인간자체로의 대우를 받을 수 는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까지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성매매란 거대한 늪 속에 직접 몸을 담고 있을 때 나는 성매매가 없어져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부터 그렇게 돈을 벌어 먹고살수 밖에 없었던 나는, 그것 외에, 그것 말고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익숙해져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세상에 툭 던져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래희망은 마담이나 업주가 되어 내 가게를 갖는 것이나, 작은 옷 가게를 하는 것, 그 뿐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불어난, 돌고 도는 돈의 필요에 따라 공장이나 식당일 정도의 적은 급여로는 생활이 되지를 않았고 짓눌린 몸처럼 정신건강도 피폐해져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기도 했고, 또 다른 사회가 요구라는 학력이나 경력, 자격 조건에 스스로가 미달된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십년이상을 보내고 이제 성매매여성이라는 이름이 내 것이 아니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온전한 선택이 아니다.
어리고 세상에 무지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가 갈 곳 이 없어 선택한 업소는 나에게 오라하는 유일한 곳이었고, 그 곳에서 손님들을 받으며 그들이 설사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한다해 도 우선에 걱정해야 하는 것은 하기 싫은 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니라 ‘저 사람은 이미 나에게 돈을 지불했고, 저 요구상항을 해주지 않으면 나는 돈을 벌수 없을 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
지불한 돈에 대해 손님이란 남자가 나에게 행할 수 있는 요구사항은, 처음부터 선이 없다. 돈을 받으려면 그냥 원하는 것을 다 해야 하는, 그래야 끝이 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왔다 갔다 하는, 코너에 벌거벗은 채로 몰려 있는 것 과 같다. 폭력은 꼭 피가 난무하니 않아도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는 매순간이 폭력의 연속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던져버린 후 생계가 또 다른 공포로 다가오는 그 상황 자체가 이미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없게 말이다.
연예인처럼 화장을 해야 하고,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늘 다이어트에 시달리며, 그 앞에 앉아있는 나는 이미 온전한 한 인간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나를 앞에 놓고 물건 값처럼 가격이 매겨지고 때로는 할인도 하며, 도대체가 기준을 알 수 없는 서비스도 요구 당하며, 오늘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에 더 잘해줘야 한다는 애프터서비스 도 만들어가며, 그냥 하나의 상품이 될 뿐이다. 돈을 지불하는 그 순간 손님이 상품의 주인이 되는 그 세계가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단칼에 피가 나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그 현실에 젖어들고 익숙해져 나를 잃어버리는, 내 스스로가 나에게 벌어지는 현실에 분노하기를 잊어 버리는 것, 그로 인해서 돈으로 한 인간을 소유 할 수 있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폭력인지도 구분 할 수 없이 스스로가 익숙해져버리는 것이 아닐까싶다.
이글은 성매매 방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성매매 경험여성 ‘앤지(필명)’씨가 쓴 글이다. [굿모닝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