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은 사기다? 마술사 정연형이 사기꾼을 자처하는 이유

M뉴스
2018-05-08 12:01



그를 처음 본 건 아산 탕정 지중해마을에서다. 


바람이 제법 차갑던 날, 그는 거리 한 가운데서 마술 버스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던 그가 말했다.


“여러분, 저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 여러분에게 재미를 주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박수 좀 주세요!”


글=윤현주 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스물아홉 살 마술사 정연형, 마주앉은 그는 거리에서 만났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짓던 익살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술에 매료 된지 12년 째, 누가 뭐래도 아직 마술이 좋다!


연형 씨가 마술의 매력에 빠진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전 특출 난 게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우연히 친구가 마술을 하는 걸 보고, 내가 저걸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또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마술 동아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마술은 그저 취미일 뿐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해 마술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다보니 마술사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원형 씨는 마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동부산대학 마술학과에 진학했다.


“부모님은 마술을 취미로만 하길 바라셨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건 마술이니까 부모님을 설득했죠. 대학생활의 절반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그래서 마술학과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행정학과로 편입을 했어요.”


행정학 공부를 하면서도 연형 씨는 마술을 놓지 않았다. 


군악대 마술병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무대 울렁증을 극복했고, 보다 나은 마술을 선보이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마술을 연습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12년...... 1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연형 씨는 마술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마술이 돈이 되거나, 미래가 보장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마술을 선보이는 게 너무 좋아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는 보는 사람들이 좋고,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도 마술사가 천직인가 봐요.”


마술사로 살기 위해 오늘을 사는 청춘


주말에는 마술사 정연형으로 관객 앞에서 서지만 평일에 정연형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일 중 생산직 업무를 택한 건 오로지 주말에 쉴 수 있다는 근무 조건 때문이었다.


“유명한 마술사가 아니고서는 마술만 해서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과 적절히 타협을 했어요. 평일엔 직장인으로 살고 주말엔 내가 하고 싶은 마술을 하는 거죠.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지겹지 않은 건 주말이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 앞에 마술사 정연형으로 서는 순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연형 씨는 주로 거리공연을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장소와 날씨에 따라 관객의 반응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반응이 좋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죠.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해서 우울해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왜 그럴까를 고민하죠.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공연을 만들어 가는 거, 그게 재미있어요.”


연형 씨는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단국대 문화예술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보다 나은 마술사가 되기 위해선 자기계발이 필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숨이 턱까지 차올라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마술을 전업으로 하는 친구들을 보며 힘을 낸다고 했다. 


직업이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으려 새로운 마술을 연습하고, 발전하는 친구들에게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가 할 수 있는 마술은 100가지가 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조갈증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요즘 저글링을 연습하는 중이에요. 마술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좋죠. 저글링 공연은 기껏해야 3분인데 그 3분을 위해 한 달 넘게 연습을 하고 있어요. 과정은 힘들어도 거리에 나가서 느끼는 행복감이 보상이 되니 참아야죠.”


마술은 사기다? 마술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다.


공연을 하다보면 간혹 사기꾼(?)으로 몰릴 때가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저거 사기야!”하고 소리치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사기든, 트릭이든 마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됐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거리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약간의 팁을 주시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노부부가 주머니에서 꼬깃한 오만 원을 제 손에 쥐어 주시더라고요. 분명 그 분들에게 큰돈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게 기꺼이 내어 주시며 고맙다고, 너무 잘 봤다고 하시는데 뭉클했어요.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고요.”


연형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은 장소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전 그럴듯하게 꾸며진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을 꿈꾸지 않아요. 시간에 맞춰 나를 보러 오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아직은 거리 공연이 좋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전국 각지의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계획이에요.”


만약 어딘가에서 그를 보게 된다면 걸음을 멈추고 그의 마술에 집중해 주길 부탁한다. 당신의 웃음과 박수가 그의 청춘에, 그의 열정에 힘이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