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초등학교 졸업생 안경예 할머니 이야기-
졸업은 누구에게나 ‘뭉클한’ 순간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뭉클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와 강도의 차이일 뿐.
여기, 6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71살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쥔 이가 있다.
며칠 전 인주초등학교를 졸업한 안경예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할머니에게 지난 6년은 어떤 시간일까? 그리고 졸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글=윤현주 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학교에 가고 싶더라고, 배우고 싶어서...“
안경예 할머니가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귀농 후 1년이 지나서였다.
처음 1년은 일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농촌생활 1년 만에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를 못 다녔어요. 8남매 중 중간에 껴있다 보니 언니도, 동생도 다 학교를 갔는데 나만 못 갔어. 그런데 그런거 생각 않고 살다가 자식 다 키우고 나니까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서 한글을 읽을 줄은 아는데 쓸 줄 몰랐거든. 그래서 학교 가서 한글도 배우고 하면 좋겠다 싶었지.”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할머니를 학교로 이끈 것이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는 그걸 못했어. 쓰는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남편한테 ‘나 학교 가고 싶어’ 하니까 가라고 하더라고. 100% 찬성한다고.”
입학식 3일 전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안경예 할머니는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학교를 환갑이 훌쩍 지나서 가게 될 줄이야!
“입학식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신기한가봐. 사람들이 막 쳐다보고 이야기하니까 부끄럽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나봐. 집에 오니 등이 축축하게 젖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한테 그랬어. ‘경예야,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거야.’ 그러고는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학교에 다녔어요.”
함께여서 행복했다고...
할머니에게 초등학교 6년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환히 웃으며 “행복했다”고 답했다. 뭐가 그렇게 행복했냐 되물었더니 “사랑스러운 아이들 때문에 행복했다”며 말을 이었다.
“1학년 땐 아이들에게 내 손이 필요한 순간이 많았어요. 애들 화장실도 데리고 가고, 필요한 것도 내가 챙겨줬지. 아이들이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할 때 내가 선뜻 도와줄 수 있으니까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에 행복하더라고. 애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고 따르면 그게 또 그렇게 좋았어요.”
하지만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수업이 일찍 끝나니 집안일과 농사일을 할 시간이 있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는 늘 일에 치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수업이 늘어나니까 집에 오면 4시야. 그러면 집에 오는 순간부터 일을 하는 거지.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눈뜨면 또 학교가고... 힘들었는데 나 자신을 이겨야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도 열심히 다녔어요. 학교가 뭔지, 피곤해서 쉬고 싶다가고 학교 교문만 들어서면 힘든 것도 잊어.”
이야기를 하는 안경예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학교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한 눈에 보일 만큼.
“선생님들 자랑도 좀 해야지. 우리 선생님들도 엄청 좋았어요. 내 나이에 학교를 다니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서 가끔 선생님들께 내가 투정을 부리는 거지. ‘6학년까지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하고 물어보면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그랬어요. 그렇게 응원해줘서 6학년까지 다닐 수 있었던 거예요. 너무 고마웠어. 다들...”
할머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리고는 “졸업 생각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네.”하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나도 자랐어.“
안경예 할머니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얻는 게 너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각기 다른 개성의 예쁜 손주들이 생겼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웠다.
그러다 그보다 큰 건 세상을 보는 눈이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땐 그냥 밥만 먹이면 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랑 생활을 해보니까 애들은 그냥 크는 게 아니더라고. 아이들은 격려해주고 사랑해줘야 커. 1학년은 글씨를 빨리 못 쓰는 애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도 잘 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니까 글씨를 쓰다가 울기도 해요. 그러면 내가 ‘할머니도 못해. 우리 같이 해보자’ 다독이곤 했지. 그러면서 생각했어. 아이들 모두 제각각 다른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 거구나. 그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나도 우리 애들 덜 혼냈을 텐데.”
안경예 할머니는 초등학교 6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지난 6년을 마음에 품고 살 거라고 이야기 했다.
“다 그리울 거야. 내가 제일 좋아했던 체육시간, 모두가 응원해줘서 절로 힘이 났던 운동회, 소풍, 체험학습. 아, 체험학습 보고서 쓰고 선생님께 내가 썼다고 자랑했던 일도 기억이 나겠다. 이제 그 기억으로 또 살아야지. ‘나는 할 수 있다’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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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초등학교 졸업생 안경예 할머니 이야기-
졸업은 누구에게나 ‘뭉클한’ 순간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뭉클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와 강도의 차이일 뿐.
여기, 6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71살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쥔 이가 있다.
며칠 전 인주초등학교를 졸업한 안경예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할머니에게 지난 6년은 어떤 시간일까? 그리고 졸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글=윤현주 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학교에 가고 싶더라고, 배우고 싶어서...“
안경예 할머니가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귀농 후 1년이 지나서였다.
처음 1년은 일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농촌생활 1년 만에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를 못 다녔어요. 8남매 중 중간에 껴있다 보니 언니도, 동생도 다 학교를 갔는데 나만 못 갔어. 그런데 그런거 생각 않고 살다가 자식 다 키우고 나니까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서 한글을 읽을 줄은 아는데 쓸 줄 몰랐거든. 그래서 학교 가서 한글도 배우고 하면 좋겠다 싶었지.”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할머니를 학교로 이끈 것이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는 그걸 못했어. 쓰는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남편한테 ‘나 학교 가고 싶어’ 하니까 가라고 하더라고. 100% 찬성한다고.”
입학식 3일 전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안경예 할머니는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학교를 환갑이 훌쩍 지나서 가게 될 줄이야!
“입학식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신기한가봐. 사람들이 막 쳐다보고 이야기하니까 부끄럽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나봐. 집에 오니 등이 축축하게 젖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한테 그랬어. ‘경예야,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거야.’ 그러고는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학교에 다녔어요.”
함께여서 행복했다고...
할머니에게 초등학교 6년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환히 웃으며 “행복했다”고 답했다. 뭐가 그렇게 행복했냐 되물었더니 “사랑스러운 아이들 때문에 행복했다”며 말을 이었다.
“1학년 땐 아이들에게 내 손이 필요한 순간이 많았어요. 애들 화장실도 데리고 가고, 필요한 것도 내가 챙겨줬지. 아이들이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할 때 내가 선뜻 도와줄 수 있으니까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에 행복하더라고. 애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고 따르면 그게 또 그렇게 좋았어요.”
하지만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수업이 일찍 끝나니 집안일과 농사일을 할 시간이 있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는 늘 일에 치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수업이 늘어나니까 집에 오면 4시야. 그러면 집에 오는 순간부터 일을 하는 거지.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눈뜨면 또 학교가고... 힘들었는데 나 자신을 이겨야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도 열심히 다녔어요. 학교가 뭔지, 피곤해서 쉬고 싶다가고 학교 교문만 들어서면 힘든 것도 잊어.”
이야기를 하는 안경예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학교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한 눈에 보일 만큼.
“선생님들 자랑도 좀 해야지. 우리 선생님들도 엄청 좋았어요. 내 나이에 학교를 다니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서 가끔 선생님들께 내가 투정을 부리는 거지. ‘6학년까지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하고 물어보면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그랬어요. 그렇게 응원해줘서 6학년까지 다닐 수 있었던 거예요. 너무 고마웠어. 다들...”
할머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리고는 “졸업 생각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네.”하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나도 자랐어.“
안경예 할머니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얻는 게 너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각기 다른 개성의 예쁜 손주들이 생겼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웠다.
그러다 그보다 큰 건 세상을 보는 눈이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땐 그냥 밥만 먹이면 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랑 생활을 해보니까 애들은 그냥 크는 게 아니더라고. 아이들은 격려해주고 사랑해줘야 커. 1학년은 글씨를 빨리 못 쓰는 애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도 잘 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니까 글씨를 쓰다가 울기도 해요. 그러면 내가 ‘할머니도 못해. 우리 같이 해보자’ 다독이곤 했지. 그러면서 생각했어. 아이들 모두 제각각 다른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 거구나. 그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나도 우리 애들 덜 혼냈을 텐데.”
안경예 할머니는 초등학교 6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지난 6년을 마음에 품고 살 거라고 이야기 했다.
“다 그리울 거야. 내가 제일 좋아했던 체육시간, 모두가 응원해줘서 절로 힘이 났던 운동회, 소풍, 체험학습. 아, 체험학습 보고서 쓰고 선생님께 내가 썼다고 자랑했던 일도 기억이 나겠다. 이제 그 기억으로 또 살아야지. ‘나는 할 수 있다’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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